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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월요논단]우리 사회 SW의 질은?
담당부서 - 등록일 2003-12-22

◆ 이교용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 위원장 lkyong@pdmc.or.kr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구하기 전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게 되었다. 미리 예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날따라 날씨도 쌀쌀하고 해서 오랜만에 집 가까이 있는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기로 했다. 큰 식당은 아니지만 겉에서 보기에 분위기 있어 보이고 건물도 꽤나 깨끗해 보이는 식당을 골랐다.

 모처럼 모인 저녁식사 자리인데 자장면만 먹는 것이 허전하기도 하고 그동안 가족에게 소홀한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장면이 아닌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씩 주문해 서로 골고루 맛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을 보고 오랜만에 가장노릇 제대로 해보는 기분이 들어 흐뭇한 마음으로 주문을 하게 됐다.

 아이들은 차림표를 열심히 보더니 직장을 그만둔 아버지 주머니를 생각해서인지 다이어트 한다고 간단히 한가지씩 시킨단다. “나는 오징어덮밥”, “나는 물만두” 하기에 “당신은?”하고 아내에게 물으니 남편 기가 꺾일까봐 인지 “잡탕밥”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우리들 모두가 좋아하는 탕수육”하고 종업원을 쳐다보니 다 외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주방 앞으로 갔다.

 그리고 손님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큰 소리로 “오물잡탕”하고 외치는데 그것을 듣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종업원의 주문소리를 들은 아내와 아이들도 표정이 밝지가 않고 찌그러진 얼굴들이다. 나도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있는데 옆 테이블 손님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손 가리고 소리 죽여 킥킥댄다. 모처럼의 외식으로 가장 노릇하면서 우쭐하려던 내가 초라해진 기분이다.

 잠시 후 주방 앞이 부산해지더니 누군가 요란하게“오물잡탕”면서 음식 나왔다고 소리를 친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아닌 다른 종업원이 음식 네 접시를 아슬아슬하게 포개서 들고 오더니 탁자 위에 소리내어 내려놓으며 “이거 누가 시켰죠”하고 당당히 물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주문한 음식을 배급받으러 온 사람들인양 종업원이 접시를 내미는 대로 각자 “제꺼예요”하고 두 손 내밀고 받아 앞에 놓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이렇게 먹어야 하나”하는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서구 선진국이나 가까운 일본의 식당은 식당 자체의 하드웨어도 훌륭하지만 소프트웨어인 종업원의 서비스의 수준도 마찬가지다. 정중하게 손님이 앉은 좌석대로 주문을 받아 기록하는 모습과 주문한 음식을 손님에게 되묻지 않고 주문한 대로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손님 앞에 가지런히 놓아준다. 선진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 서비스 수준이 선진국에 뒤지지 않으려면 식당 시설이나 환경의 수려함, 깔끔함과 음식의 맛깔스러움, 독특한 미각의 개발 못지 않게 식당운영자나 종업원들의 정중함과 정성으로 예의를 갖춰 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외관이 근사하고 맛있는 음식의 하드웨어도 식당운영자나 종업원의 서비스인 소프트웨어가 따라주지 않으면 훌륭한 시설이나 음식도 그 진가가 반감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부, 기업, 국민 모두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 가자”는 공감어린 의욕으로 착실하게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과 휴대폰의 발빠른 개발ㆍ보급을 추진하여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향유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하드웨어면에서는 그 어느 선진국도 부럽지 않은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인구가 이미 2400만명이 넘었고 휴대폰 이용자수도 3000만명이 넘는다니 가히 정보기술 대국이요, 정보통신 강국이라 할 수 있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어떤가. 하드웨어 산업에 비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취약함은 어제, 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교육수준이 높고 두뇌산업에서의 우리민족의 우수함을 들어 미래산업의 토대가 될 소프트웨어 산업육성의 유리함과 저력을 자극, 민관이 함께 노력한 결과 이제 GDP의 3%규모까지 키워져 바쁜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반면에 남이 밤낮 구분 없이 혼신의 노력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힘하나 들이지 않고 불법복제해서 팔아먹고, 불법 전송ㆍ유통시키는 일부 무임승차 악덕업자의 처벌ㆍ구속 소식은 심각한 수준으로 범죄인식이 무뎌지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느해 11월에 육림의 날이라 해 4월 식목일에 심은 묘목들이 잘 자라는지 다시 산에 찾아가 돌보고 잘 자라나도록 관리해 주는 날이 있어 매년 산에 오르던 기억이 새롭다. 나무를 심는 것만이 풍요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는데 미래 경제발전의 핵심관건이라고 하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잘 크는지 살펴야 한다. 최근 대기업 직원의 소프트웨어 비밀 반출과 퇴직후 경쟁기업으로 팔어먹기 사건을 보면서 개발 소프트웨어의 산업화, 판로개척지원의 중요성,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또한 정품 소프트웨어 이용과 스팸메일 무차별 전송차단, 남을 배려하는 휴대폰 사용 등 건전한 정보통신 이용문화 확산이 바람직한 정보화시대 민족문화 운동으로 승화되어 하루빨리 모두 체질화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의 일상적 단면들도 훌륭한 시스템, 제도, 인프라의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에 걸맞은 문화와 남에 대한 배려라는 소프트웨어가 뒤따라 주지 않아 혼란과 혼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소프트웨어, 컴퓨터 프로그램의 불법복제와 이것의 전송 및 유통이 범죄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확산시키는 것이 미래 국가 경쟁력의 관건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그 못지 않게 국민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남을 배려하는 문화와 의식의 소프트웨어가 올바로 개발되고 정착되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선진국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워 가는데 시급한 과제라는 점을 제기하고 싶다.

기고처 : 전자신문

출처: 전자신문